한 줄 요약: 시장 상승기에 느슨해진 국민연금의 투자 규칙이 하락장에서의 대응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2024년 10월 21일자 기사 기준,
시장이 오를 때는 어떤 투자 전략도 완벽해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 증시의 하락은 국민연금(NPS)이 시장 호황의 아군인 것처럼 행동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글로벌 AI 지출에 대한 의구심과 미국의 금리 전망 변화가 하락을 이끌었지만, 진짜 문제는 국민연금이 왜 이토록 대응할 여력이 없는 상태로 하락장을 맞이했느냐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투자 프레임워크는 시장 상황이 변하더라도 유지되어야 하는 규칙에 기반한다. 주식 비중이 목표치를 넘어서면 팔고, 가격이 떨어지면 사는 '리밸런싱'이 핵심적인 규율이다.
하지만 올해 국민연금은 한국 주식이 급등할 때 이 규율을 스스로 느슨하게 만들었다. 지난 1월 국내 주식 배분 목표를 상향 조정하고 리밸런싱을 미루더니, 5월에는 허용 범위를 또다시 넓혔다. 상승장 동안 주식을 더 많이 보유하게 된 결과, 가격이 반전되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지는 사라졌다.
실제로 지난 6월 30일부터 최근까지,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287개 상장 기업의 가치는 약 182조 원이 증발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하락분의 약 72%를 차지하며, 포트폴리오가 특정 반도체 기업에 얼마나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연금 운용진은 급격한 매도로 인한 시장 충격을 우려해 규칙 적용을 유예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투자 가이드라인의 목적은 바로 그런 '어려운 선택'을 사전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수행하도록 하는 데 있다. 매도 압박이 느껴질 때마다 가드레일을 옮긴다면, 그 어떤 연금 펀드가 신뢰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더욱 심각한 것은 불투명성이다. 이번 변경을 승인한 위원회 회의록은 2030년이 되어서야 공개될 예정이다. 의사결정의 근거를 알기 위해 국민들이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자산 배분 결정이 단기적인 정책 목표에 휘둘리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며, 주요 변경 사항에 대해서는 독립적인 검연을 의무화해야 한다.
시장은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자신들의 노후 자금을 관리하는 규칙이 시장의 운세에 따라 이리저리 바뀐다고 믿기 시작한다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